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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폭탄의 아버지, 시대가 낳았고 시대가 죽였다

“프로메테우스는 신들로부터 불을 훔쳐 인간에게 주었다. 그 형벌로 그는 바위에 묶여 영원히 고통받았다.”(Prometheus stole fire from the god and gave it to man. For this he was chained to a rock and tortured for eternity.)   ‘다크 나이트’ 3부작, ‘인셉션’의 감독 크리스토퍼 놀런의 열두 번째 작품 ‘오펜하이머’는 그리스 신화의 프로메테우스를 떠올리는 자막으로 시작한다. 천재 과학자 J. 로버트 오펜하이머가 세계 최초의 핵 개발 계획인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원자폭탄을 개발한 이야기에 놀란 감독은 왜 프로메테우스를 소환했을까.     ‘먼저 생각하는’을 의미하는 그리스어의 접두사 ‘pro~’의 기원일지도 모를, 프로메테우스는 선지자를 뜻한다. 프로메테우스의 계략에 분노한 제우스는 인간을 벌하기 위해 최초의 여자 ‘판도라’를 만들어 프로메테우스의 동생 에피메테우스로 하여금 아내로 맞이하게 한다. 인류는 불을 선물 받았지만 ‘판도라의 상자’라는 재앙을 감수해야 했다.     오펜하이머스가 개발한 핵무기는 전쟁을 끝내고 인류 평화를 위함이 동기였다. 그러나 핵은 오늘 날 인류 평화의 가장 큰 걸림돌이다. 오펜하이머를 프로메테우스에 비유한 감독의 의도가 보인다.     오펜하이머는 역사에 대한 이야기요 한 과학자의 삶에 대한 전기 영화지만 ‘시간과 사유의 매스터’ 크리스토퍼 놀런의 작품답게 오펜하이머의 삶에 프로메테우스의 신화를 대입, 스토리를 세밀하게 심화한다.     ‘오펜하이머’는 3월 거행될 아카데미상 시상식에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남우주연상(킬리언 머피), 남우조연상(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여우조연상(에밀리 브런트) 등의 주요 부문에 모두 후보를 낼 것이 확실하다.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킬러스으브 더 플라워 문’과 작품상, 감독상을 놓고 팽팽한 경쟁을 벌일 가능성이 높다.     영화는 세상을 영원히 바꾼 원자폭탄, 폭발 그리고 파괴의 불가분의 관계를 파고 든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위기에 처한 세상을 구하기 위해, 그러나 오히려 세상을 파괴할 지도 모르는 선택을 해야 하는 천재의 고민, 그가 품었던 의구심 그리고 몰락에 관한 탐구적 서사다.     오펜하이머(킬리언 머피)는 원자폭탄 개발 계획인 맨해튼 프로젝트에 착수하여 실험을 이어간다. 숱한 실험을 이어가는 동안 히틀러는 자살했으며 나치는 붕괴했다. 맨해튼 프로젝트는 독일보다 먼저 원자폭탄을 내놔야 한다는 강박에서 시작됐다. 목표인 나치는 사라져버렸다. 대량 살상용 무기의 필요성에 대한 의구심이 그의 마음속에 일어나기 시작한다.     와중에 일본과의 전쟁은 아직 진행 중이다. 항복의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폭탄의 대상이 바뀐다. 실험은 계속되며 드디어 완성된 폭탄은 ‘폭발 실험’으로 이어진다. 치욕의 진주만 공습에 대한 보복과 함께 소련 등 경쟁 강대국에게 이제 누가 세계 최강인지를 확실하게 각인시킨다. 장엄하게 22만명의 사상자를 내면서.     그러나 미국이 아닌, 인류 전체의 입장에서 보면 참으로 암울한 결과다. 제2차 세계대전을 종식시킨 핵폭탄이었지만, 제3차 세계대전에 이르면 인류의 멸망을 초래할 수 있음에 오늘날 모두가 두려워하고 있다. 오펜하이머의 원폭은 프로메테우스의 불에 비유될 만큼 인류에게 반갑기만 한 선물은 아니었다.         맨해튼 프로젝트의 성공으로 2차 대전 승전 영웅이 된 오펜하이머, 자신의 천재성과 명성에 취해있던 그였지만 이후 매카시즘 그리고 그와 대립 관계에 있던 원자력위원회 의장 루이스 스트로스(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복수심에 휘말려 고통과 고뇌의 시간을 갖는다. 그리고 그의 삶은 결국 몰락의 길로 접어든다. 원자폭탄에 이어 더 무서운 수소폭탄이 개발되고, 그와 알력을 빚던 스트로스가 새로운 별로 각광받는다.     불행하게도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이다. 별은 영원히 빛날 수 없다. 폭탄은 폭발과 동시에 그 쓰임을 잃는다. 쓰임을 다한 과학자 오펜하이머는 이제 정상에서 내려와야 한다. 추앙의 대상이던 그를 몰아내기 위해 청문회가 시작된다.     영화 속 오펜하이머는 청문회 과정에서 자신을 몰아내려는 세력에 대하여 대응하지 않는다. 그의 내면에 자리 잡고 있는 죄책감 때문이다. 자신이 개발한 핵이 인류의 미래에 미칠 결과에 대한 죄책감.   이는 죄책감 따위는 없었던 신화 속 프로메테우스의 내면과는 극명하게 대비된다. 프로메테우스는 3만년 후 헤라클레스에 의해 구출되며 제우스로부터 사면을 받는다. 신화와 달리 오펜하이머와 그의 가족의 삶은 불행하게 막을 내린다. 오펜하이머는 원자력계에서 퇴출당하면서 명예를 잃고 62세에 후두암으로, 그리고 5년 후 아내 키티도 폐색전증으로 사망한다. 딸 또한 아버지로 인한 사회적 연좌제에 시달려 32세 젊은 나이에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영화 말미, 얘기를 나누고 있는 오펜하이머와 아인슈타인을 향해 멀리서 스트로스가 다가온다. 그는 또 하나의 중성자다. 이들의 충돌, 분노와 갈등, 혐오가 ‘파괴와 파멸’이라는 연쇄작용을 일으킨다.     갈등의 피로와 감정들이 곳곳에 부유한다. 상처의 부정적 에너지가 주변 사람들에게 전염되고 고통과 비극은 이후 냉전 체제로 이어진다. 감정에서 비롯된 충돌은 인류를 파멸시킬 수 있는 씨앗으로 남아 지금 이 순간도 성장하고 있다. 영화 ‘오펜하이머’는 지구 전체의 파멸을 불러일으킬 폭발에 대한 경고다.   김정 영화평론가원자폭탄 아버지 원자폭탄 개발 로버트 오펜하이머 원자폭탄 폭발

2024-01-19

[노트북을 열며] 김정은과 오펜하이머

영화 ‘오펜하이머’를 보며 떠오른 사진 한 장. 2016년 3월 9일 북한 노동신문이 공개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현지지도 사진이다. 자신만만한 표정의 김정은 위원장이 손으로 가리키고 있는 건 동그란 공 모양 물체. 북한의 주장이 맞는다면,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에 탑재해 미국 본토까지 타격 가능한 작고 가벼운 내폭형 핵 기폭장치다. ‘오펜하이머’에서 맨해튼 프로젝트의 물리학자들이 오각형과 육각형의 고폭렌즈를 끼워 구(球) 모양으로 조립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김정은 위원장이 자랑한 내폭장치의 선배 격이다.   ‘오펜하이머’의 과학자들이 고폭렌즈 32개를 조립해 만든 핵폭탄의 이름은 ‘팻맨(fat man)’. 일본 나가사키(長崎)를 초토화했다. 2016년 북한이 공개한 내폭장치는, 그 주장이 사실이라고 가정하면, 약 72개의 고폭렌즈로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는 분석이 나왔다. 김정은 위원장은 ‘오펜하이머’를 누구보다도 달뜬 마음으로 보지 않았을까.   ‘오펜하이머’는 적어도 한반도 38선 이남에 태어나 살아가는 우리에겐 단순한 블록버스터 영화일 수 없다. 미국의 핵으로 1945년의 광복은 앞당겨졌지만, 북한의 핵을 머리에 이고 살아가고 있는 게 2023년 현재 우리의 현실이다. 현실이 무섭다는 걸 자각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더 무섭다.   2016년 이후, 분명히 늘어난 건 북한의 핵물질과 핵능력밖엔 없지 않을까. 한국은 일관된 대북 정책 없이 정권에 따라 진자 운동과 정쟁만을 되풀이해왔다.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도 심각하지만, 정작 북핵 위협과 북한 인권 문제엔 꿀 먹은 벙어리가 되는 이들이 상당수다. 그사이 김정은은 열 살로 추정되는 딸 주애의 손을 잡고 미사일 시험발사 현장에 나타나고, 사실상 미사일을 ‘군사정찰 위성’이라며 정상국가 코스프레중이다.   로버트 오펜하이머(1904~1967)는 원폭 실험에 성공한 뒤, 힌두교 경전 ‘바가바드 기타’의 다음 구절을 되뇌며 자책했다고 한다. “나는 이제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됐다.” 21세기의 파괴자를 꿈꾸며 독재 정권의 수명 연장을 꿈꾸는 김정은 위원장에게 오펜하이머가 했다는 다음 말을 전한다. “(핵폭탄을) 갖게되면 이 나라를 구할 수 있고 평화를 얻을 수 있으리라고 믿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생각이다”(‘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 635쪽). 북핵 문제는 이미 요단강과 삼도천을 건넌 듯한 절망의 영역으로 치부되곤 하지만, 그럼에도 그가 평양의 프로메테우스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희망의 끈은 놓지 말아야 할 터다. 전수진 / 한국 투데이·피플팀장노트북을 열며 김정은 오펜하이머 북핵 문제 로버트 오펜하이머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

2023-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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